여느 때처럼 그냥 저냥 과제에 치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친구인 ㅁ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ㅁ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한국인으로서 고맙죠.
근데 한국을 접하게 된 계기가 학부 때 논문을 한국 군사정권 당시의 언론 및 자료 기록에 대해 쓰면서였다고 합니다.
대체로 k팝 등 조금 더 가벼운 주제로 관심을 가지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신기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정치와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ㅁ은 한국어도 수준급으로 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말도 엄청 잘 할 거 같던데, 절대 하지는 않더군요.
일단 듣는 거는 진짜 완벽한 것 같고, 읽는 것도 조금만 노려보니까 다 잘 알더라구요?
요즘에는 정말 한국어 잘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한국어로 말 할 때도 조심해야 한답니다.
아무튼 이 친구가 이렇게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평소에 한국과 관련된 행사들을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에 저 링크를 보내며 혹시 저도 관심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ㅁ이 저보다 한국에 대해 더 잘 알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외국인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저도 참여해보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준 링크를 따라 들어가서 제 자리를 예약했습니다.
행사는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하더군요.
잘 몰랐는데, 정말 저희 학교 위치가 좋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주영 한국문화원이 저희 학교 캠퍼스와 같은 street에 위치해 있더군요.
걸어서도 갈 수 있을 거리였습니다.
저희 학교 조금만 걸어가면 쇼핑하기 좋은 코벤트 가든도 있고, 겨울에는 야외 아이스링크장 생기는 소머셋 하우스도 바로 옆에 있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소호도 있고 놀거리 엄청 많답니다. 킹스 꼭 오세요.
노는 것만 있는 건 아니고 공부할 시설도 좋아서,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할 수 있답니다.
아무튼
신청을 하고 나니 다음과 같이 한국문화원 쪽에서 컨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리딩 위크 주간이어서 따로 수업은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학교에 나와 과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있다가 갈 수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 스트랜드 캠퍼스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Maughan(몬 이라고 발음합니다) 도서관이 있는데, 당일에는 이 도서관에 아침에 출근해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꽤나 고풍스럽게 생긴 도서관이라 학교 온 첫 주간에는 진짜 너무 예뻐서 자주 갔는데,
옛날 건물이다 보니 뭔가 동선이 효율적이지도 않고, 옛날 건물 냄새도 퍽퍽 나고 그래서 잘 안 가고 있었어요.
딱 밖에서 보면 예쁘구나 싶은 정도였습니다.
또 본 캠퍼스에서 1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는 점이 조금 별로였습니다.
변덕스러운 런던 날씨 특성 상 잠시 커피 한 잔 하러 나갔다가 소나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고, 수업 공강 시간에 다녀오기에는 또 이동 시간 왕복 2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이 날아가기 때문에 정말 계륵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잘 안 가고 있었는데, 친구 ㄹ이 오랜만에 자기가 도서관에 왔으니, 같이 자리를 지켜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웬만해서는 안 가려고 했는데,
이 곳에 자리를 잡아놨다고 하길래 바로 갔습니다.
이 곳이 저희 몬 도서관 명물인데, 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안 나고 친구들끼리 그냥 Round Room으로 부르는 공간입니다.
정말 효율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낭만 그 자체의 공간입니다.
한 번 정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또 인기가 많은 곳이라 한 번도 자리를 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마침 ㄹ이 자리를 잡아놨다고 하길래 갔습니다.
그렇게 아침부터 적당히 할 거를 하고, ㄹ과 점심을 먹고 저는 한국문화원으로 향했습니다.
우산을 안 들고 왔는데, 비가 오더라구요.
런더너처럼 맞아야지 했는데, 빗줄기가 굵어지자 체념하고 접는 우산 하나를 부츠에서 구매했습니다.
이럴 때 정말 한국 편의점 우산이 그립더군요.
여기서는 한국처럼 그런 비닐 우산은 마트에서 잘 안 파는 것 같아요.
한국문화원을 가는 길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구글맵을 따라 쭈욱 가고 있었는데, 웅장하게 전시되어 있는 LG의 최첨단 나노셀 tv들을 보고 바로 이 곳이구나 직감했습니다.
주영한국문화원은 정말 위치도 좋은 곳에 있었습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Embankment 방향으로 Northumberland Avenue를 따라 내려오면 왼편에 위치해있습니다.
길을 따라 더 내려오시면 5성 코린티아 호텔을 볼 수 있고, 강가에 도착해서 길을 따라 내려오시다보면 영 국방성 앞의 한국전 참전비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런던 아이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런던 속 한국 테마로 셀프 투어하셔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공연은 정말 좋았습니다.
타지 생활하면서 초심을 잃을 때가 많았는데,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좀 장소가 협소해서 그랬는지 무대와 관객석이 너무 가까워서 살짝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우리 소리의 명창들이 해주시는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귀가 즐거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공연해주신 출연진 분들 모두가 나오셔서 경기아리랑을 공연하셨는데, 정말 눈물 주르륵할 뻔 했습니다.
밖에 나와 살다 보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특히 저 같이 중동을 공부하다 보면, 나라 잃은, 또는 현대적 개념의 나라가 존재한 적이 없는 민족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러한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언제든지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과도한 국수주의, 민족주의로 변질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우리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 많은 이들의 노력에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끝나고 한국문화원 측으로부터 많은 기념품을 받았습니다.
공연도 무료로 봤는데, 기념품도 무료로 받게 되어서 정말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그 중 불국사, 수원화성 등등 우리 문화재가 배경이 된 노트북 스티커도 여럿 받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스탬프 투어도 했던 수원 화성을 제 노트북에 붙였고, ㄹ에게도 하나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ㄹ은 불국사를 선택해서 자기 맥북에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