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cademia에 남겠다 - 포닥을 한다
2. Industry로 가겠다 - 포닥을 할까?
3. 어느 나라로 갈까
4. 제 계획
지난번 칼럼에서는 "포닥 때 배울 것과 대학원 때 배울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니 도움이 되었다" 라고 적었는데요, 대학원을 유학 및 졸업하고 나서 어떤 길들이 있는지, 저는 (지금으로서) 어떤 길을 걷고자 하는지 간단하게 적어 보려고 합니다. 삶에 정답은 없고, 치열하게 (때로는 별 생각 없이..!) 내린 결론이 본인에게 정답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참, 오늘의 글은 정말로 제 전공(화학)에 관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이야기들도 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어? 내가 선배들에게 들은 거랑은 말이 다른데?" 싶다면 제가 틀렸으니 혼동하지 말아 주세요.
1. Academia에 남겠다 - 포닥을 한다
첫 번째는 아카데미아, 즉 학계에 남겠다는 결정입니다. 어디 대학에서 교수로서 연구를 할 수도 있고, 가르치는 건 말고 연구만 하고 싶다면 연구소 같은 곳을 알아볼 수도 있겠습니다. 기업에도 R&D 부서가 있어서 연구원으로 재직할 수는 있지만, 할 수 있는 연구의 자유도 면에서는 아무래도 회사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니, 보통 학계에 뜻이 있으신 분들이 택하게 되는 선택지는 학교나 연구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착지가 어느 나라, 어느 기관이 되든 일반적으로 거쳐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입니다. 너무나도 잘 아시겠지만, 박사를 딴 뒤에 어떤 그룹에 속해서 실질 실무 책임자로 일을 하면서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을 뽑을 때야 funding이 학과와 교수 연구비에서 같이 나오기 때문에 일단 과에 지원하고 합격하면 되는 경우가 많지만 포닥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 랩의 연구실에서 funding이 100% 나오게 되기 때문에, 1) 이 친구가 마음에 들고, 2) 랩에 마침 포닥 빈 자리가 났거나 추가적으로 포닥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 타이밍이 딱 맞는 게 중요하다고요. 물론, fellowship이나 과제와 같은 personal funding source를 물고 온다면 훨씬 쉬워진다고도 들었습니다. 최근의 우리나라처럼 대대적인 예산 삭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쪽도 대학원생들이 노조를 만들어서 파업하고, 이 때문에 stipend가 전반적으로 크게 상승하는 등 최근에 연구비와 관련된 이슈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포닥을 갈 때 내가 하던 걸 100% 똑같이 이어 나가야 하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가 대학원 과정 때 갈고닦은 무기를 활용할 수만 있다면, 다른 걸 경험해 보고 배우면서 확장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방향성을 바꿔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뭔가를 바꾼다는 게 더욱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겠지요.
포닥의 삶이라는 게 조건만 보자면 industry와 비교했을 때 덜 매력적인 경우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똑같이 박사를 졸업한 다음에 바로 회사로 가게 되면 고용 안정성도, 경제적인 보상도 포닥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학계에 대한 불만, 싫증, 피로, 불안 등이 모두 함께 작용해 아무래도 점점 연차가 올라가고 고민이 현실화될수록 박사 졸업 후 포닥이 아니라 회사를 택하고자 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마찬가지로요.
잠깐 흐름에서 벗어나 첨언하자면, 미국에서는 COVID 이후 경기가 좋고 특히 biomedical industry 쪽에 엄청난 돈이 흘러들어감에 따라 박사 졸업자들이 전부 industry로 뛰어들어 포닥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조금씩 경기 과열이 안정되고, bio industry 고용이 전같지 않고, 랩에서 주는 stipend도 늘어났다 보니 포닥을 택하는 비율이 다시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academia에 남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졸업 후에도 연구실에서 몇 년씩 더 보낼 수 있는지, 그렇다면 포닥 때와 대학원 때는 뭘 해 보고 싶은지 등, 스스로에게 이따금씩 물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후의 일에 너무 지레 겁먹고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지만, 덜컥 그 환경에 놓이기 전에 마음의 준비라도 먼저 하는 것도 때로는 좋은 것 같아서요.
보상, 특히 경제적 보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본인의 가치와 꿈과 흥미가 확고해서 충분히 그 시기를 버텨 보고자 한다면, why not 아니겠어요.
2. Industry로 가겠다 - 포닥을 할까?
창업이 되었든 취업이 되었든 인더스트리를 택한다면, 조금 더 선택권이 생깁니다. 졸업 후 바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뛰어 들어도 되고, 포닥을 좀 더 하다가 갈 수도 있겠습니다.
전공과 분야에 따라서 포닥보다는 하루라도 더 일찍 실무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할 수도 있고, 포닥의 경력이 도움이 많이 되고 또 그에 따라 회사에서 잘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제가 속해 있던 연구실 한 곳에서는 선배들이 모 기업에 많이 입사했는데, 미국으로 포닥을 다녀오면 그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해서 더 높은 연봉(호봉)으로 대우해준다고 하더라고요.
포닥이든 연구원이든 교수든, 아카데미아에 있다가 인터스트리로 빠지는 건 기회가 있을 때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지만, 인더스트리로 갔다가 다시 아카데미아로 돌아오는 것은 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불가능하다거나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가령 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이 창업을 하면서 academia에 있다가 인더스트리로 발을 담그게 되는 길도 있겠습니다. 교수님들의 창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또 국가나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주변의 여론도 기댓값도 (가능한 아웃풋과 그 확률 모두) 다른 것 같지만요.
3. 어느 나라로 갈까
국가도 미래를 고민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살고 싶은 나라나 환경이 어디인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고, 본인이 결정한 일을 하기 좋은 곳이 어디인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원 유학을 하게 된다면 그 나라에 잔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 더 열어 놓았다고 생각하고,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도 같이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4. 제 계획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았고, 과학의 길에 있어서 향방이 바뀌기에는 정말 충분할 만큼 남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생각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저는 포닥을 하다가 학교에 들어가서 아카데미아에 남는 길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저는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고, (아직까지는) 연구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기도 하고요.
또한, 저는 교수로서 연구를 하다가 아이템이 생기면 창업을 병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산학이 잘 맞물려 돌아가는 선순환의 구조가 새로운 자본과 인적 자원이 이공계로 유입될 유인이 될 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만 해도 실험 벤치 위에 있던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이 세상 밖으로 꺼내져서 자기 역할을 하는 모습을 우린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으니까요. 본인이 중심을 둘 '본업'을 생각하고 그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매니지하는 게 참 어렵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또 언젠가 그런 식으로도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꿈 꾸고 있습니다.
같이 과학의 길을 걷는 친구들 중에 정말 똑똑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 '그래 너 같은 사람이 교수를 해야지' 싶은 친구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의기소침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고민하고 의심하면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간 저한테 맞는 길에 닿겠거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안하지만 저마다의 꿈과 이유를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우리 모두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