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영어 때문에 고민하고 계신 것 같아 제 개인적인 어학연수 경험을 남깁니다. 해외 연수 관련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먼저 1. 필리핀 6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토익 성적을 만들어서 2. 미국 교환학생으로 가서 미국 학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영어교육 전공). 그 후에 3. 2년 과정인 미국 석사 과정을 1년으로 압축해서 졸업하고 (영어교육 전공), 4. 이번 가을에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방 국립대 사범대 출신이며 (영어 교육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영어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간단하게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언어교육원에서 10개월 동안 영어를 공부했으나 마지막 토익 시험에서 800점을 넘기지 못하고 카투사를 포기하고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 교수가 되고 싶었으나 지금 상태로는 영어가 많이 부족해서 미국 유학을 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고민하던 끝에 필리핀으로 6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제 어학연수 방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영어 발음
많은 분들이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울 경우 발음을 걱정하셔서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시는데 저는 제가 미국 대학교에서 ESL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어학연수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발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리핀에서 유학할 경우 영어 발음이 (특히 인토네이션) 필리핀 사람들처럼 바뀔 수 있다는 점은 맞습니다. 그러나 보통 필리핀 어학연수의 경우 길어도 6개월을 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미국에서 유학을 하실 경우 주변 환경에 맞게 발음이 다시 바뀌게 됩니다. 평생 필리핀에서 사실 생각이 아니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실 경우 보통 7-15명 정도 학생이 한 반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가 있는 미국대학에서는 ESL 수업을 이렇게 운영합니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이 때문에 일일이 발음을 교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계 학생이 r발음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 대략 5-6번 정도 같이 발음을 연습해줄 수는 있지만 다른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발음을 완전히 고칠 때까지 교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경우 미국에서 오래 살아도 발음을 계속 교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국어 악센트를 고치기 어렵습니다.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실 경우 보통 1:1로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이 원할 경우 발음이 교정될 때까지 선생님과 연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들은 엄선해서 고용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악센트가 심하지는 않습니다.
제 전공이 언어학이기 때문에 발음에 대해 학문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사춘기 이후에 영어를 학습할 경우 사실상 원어민처럼 발음을 교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biological aspect), 미국 내에서도 다양한 발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엇이 표준어라고 정의하기도 힘들고 그렇게 발음할 필요도 없습니다 (social aspect). 즉, 의사소통만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발음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2. 영어 레벨
몇몇 분들은 영어 문법에 대한 기초도 없이 영어 기초부터 어학연수를 통해 배우시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학연수를 하시는 경우 문법에 대해 한국처럼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은 없으며, 기초부터 영어로 배우려는 경우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인 친구가 여러분에게 한국어 주어 뒤에 은/는/이/가를 어떤 경우에 쓰는지 물어본다고 생각하면 쉽게 상상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마찬가지로 영어권 화자 또한 영어 문법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는 언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 있지만 많은 성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아이처럼 모국어 없이 영어를 배우려는 분들도 계시는데,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초반에 성인들의 학습 속도가 월등하게 빠르다고 나와있습니다. 성인들은 살아오면서 학습 전략을 개발하고 이미 모국어를 아는 단어를 영어로 바꾸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성인의 학습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발음 관련 부분은 제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외국어 학습에 실패하는 이유를 꼽자면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하루종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만 (평균 8시간), 성인은 일하면서 1-2시간 짬을 내어 수업을 듣기 때문에 절대적인 학습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물론 다른 여러가지 요인들도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최소 중급 문법 정도는 배우고 오시는 편이 좋습니다. 혼자 문법 책으로 독학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나중에 어학연수를 할 때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혼자 찾아보고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인지과학 측면에서 보자면, 최소 문법이라도 알고 있는 경우 뇌에서 한 번에 처리해야할 정보량이 줄어듭니다. 언어를 학습할 때 점점 짧은 시간을 들여 대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유도 문장을 문법에 맞게 조합하고, 단어의 소리를 알맞게 내는 등의 과정이 익숙해지며 처리해야할 정보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3. 영어 연습
필리핀의 경우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같은 한국인들끼리 모여 매일 술을 마시러 가기 쉽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고 바로 대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며 (어학연수 기관이 필리핀 대학교 안에 있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친구를 만들러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어학연수를 갔던 당시에는 아직 한국 문화가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어학연수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과정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필리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어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영어를 제2공용어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오히려 서로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천천히 말하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미국보다 더 쉬웠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필리핀에서는 외국인들에 대해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필리핀에서 받았던 배려만큼은 받지 못했습니다.
제 생활 패턴을 보자면
아침-오후: 영어 수업
오후 4시 이후: 대학교 주변에서 친구들 찾기
저녁: 수업 내용 복습 / 영어 영화보기 / 문법 공부 (하고 싶었던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찾아보기) / 친구들과 문자
주말: 영어 영화보기 / 문법 공부 / 친구들과 문자 / 지역 행사 놀러가기
이렇게 크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4. 비용
필리핀에서 6개월을 머무르며 집값, 용돈, 학비를 전부 포함해서 대략 700만원 정도 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학연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비용을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은 집값이 기본적으로 매달 $500에서 $1000 사이입니다 (지역마다 대도시인지 시골지역인지에 따라 집값에 차이가 있습니다). 학비의 경우 ESL 과정이 일반 학위과정보다 저렴하지만 대충 $4,000에서 $7,000 사이이기 때문에 지출 비용이 한 학기에 만 달러 이상입니다 (보험료도 한 학기에 $1300 정도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필리핀은 보통 1:1 수업이지만 미국에서는 최소 7명 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5. 회화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영어 문법을 공부하고 올 경우, 처음에는 머리 속에서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느라 더듬더듬 말하거나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따라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제 경우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말하는 데 익숙해지는데 두 달 정도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말을 하고 이해하는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몇몇 분들은 I love you 같은 문장을 우리가 번역하지 않고 이해하는 것처럼 영어를 그렇게 사용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당장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eat의 불규칙 과거형 ate을 반복해서 연습할 경우 (I ate salad, I ate chicken at school, I ate ice cream at home), 더 이상 이 문장들을 번역하지 않아도 될만큼 익숙한 순간이 오게 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과거형에 익숙해져서 번역을 하지 않는 경우도 평소 쓰지 않던 현재 완료형 문장을 사용하려고 하면 (I have watched the movie three times, I have been to Seoul, I have finished homework), 다시 번역하게 됩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지 않을 만큼 그 표현들을 (I ate... at ... 또는 I have eaten ...) 충분히 숙달하면 회화를 크게 향상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새로운 필리핀 친구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하는데 버벅대며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번 자기소개를 하며 비슷한 표현을 쓰고 비슷한 질문들을 받으면서 (How long have you been here? How long will you stay here?) 영어의 유창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6. 영어 시험
대학교 1학년 때 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토익 수업을 들으며 (월-금까지 매일 2시간) 토익을 위한 영어를 10개월을 공부하며 시험을 봤는데 750점을 넘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 3년 반 동안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어학연수 4개월 차쯤에 봤던 토익 모의고사에서 RC를 5개 내외로 틀리며 시험을 굉장히 잘 봤었습니다 (듣기는 대략 20개 정도 틀려서 그렇게 잘 보지는 못했습니다). 따로 토익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매일 문자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영어 자막을 보면서 독해 실력 자체가 늘어나 시험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귀국해서 교환 학생을 신청하기 위해서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토익 문제를 풀어보고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800점을 받았습니다.
7. 미국 유학
간혹 가다 미국 대학 편입을 생각하고 미국 어학연수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영국, 호주는 가보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경우 미국 대학 편입에 유리한 부분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영어를 가르치는 주립대의 경우, 어학 연수를 할 경우 마지막 레벨까지 수업을 들을 경우 토플 시험을 면제해줍니다. 그러나 학부 편입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토플 80-90점대만 나와도 쉽게 편입이 가능합니다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열심히 할 경우 6개월 안에 토플 80점은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편입이 굉장히 쉽습니다. 왜냐하면 유학생들은 비싼 학비를 장학금 없이 전부 내면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어 점수가 심하게 부족하거나 한국 대학 학점이 별로 좋지 못한 경우, 분교 캠퍼스에서 몇 학기 돌리고 본교 캠퍼스로 옮길 수 있는 제도도 있습니다. 집에서 학비만 대줄 수 있다면 SAT 시험을 보지 않고 여러분은 언제든지 토플 시험 한 번 보고 미국 학교로 편입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재 일하는 대학은 세계 100위 안에 드는 Research 중심 상위권 대학입니다. 미국 중하위권 대학까지 생각하시면 토플 점수가 60-70점대까지 내려갑니다.). 미국 대학들을 찾아보시면 Online 학위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학 기준으로 말하자면, Global 캠퍼스도 분교로 인정되어 원하면 본캠으로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교양 학점 채우다가 (기간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residential 학위를 받으려면 마지막 몇 학기는 미국에서 직접 공부하면서 학점을 채워야 합니다) 본캠으로 옮겨서 학위를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국 대학원까지 생각하시면 그냥 Online 학위를 받고 바로 석사로 가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Global 캠퍼스 학위에 따로 Global 캠퍼스 학위라고 표시하지 않습니다. 본캠인지 분교인지 알 방법도 없고 미국에서는 Online 학위도 그냥 학위와 똑같이 인정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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